2015년 4월 29일 수요일

이등병 일기 9 - 다시 시작하는 피부관리

<다시 시작하는 피부 관리>
2015.4.29.수

  나는 피부가 별로 안 좋다. 중학교 때 관리 소홀로 그렇게 됐다. 고등학생 때는 관리를 많이 한 건 아니지만 폼클렌징과 로션을 꾸준히 쓰고 가끔씩 팩을 할 정도의 관리는 했다. 그러다가 대학교 입학 이후, 그런 제품들을 쓰는 게 귀찮고 별 효과도 없다고 느꼈고, 돈도 아깝다고 생각해서 그냥 비누로 씻었다. 또 남자한테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는 건) 그런건 사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대에 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 맏선임 중 한분이신 강 일병님께서 줄기차게 피부관리가 필요하며, 여러 제품들을 반드시 써야한다고 말씀하셔서 그런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내 생각이 바뀐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바로, 피부도 강해야 군생활도 잘 된다는 거다.

  군대에서 훈련할 때 간혹 위장크림을 쓰는데 이게 잘 안 지워진다. 나는 특히 모공이 넓어서 위장크림이 모공속으로 들어갔을 때 비누만으로 잘 안 지워지고, 여러번 비누를 다시 칠해서 얼굴을 문지르다 보면 피부가 따끔거리는 상황이 생긴다. 강 일병님이 나의 피부타입에 대해 분석해주셨고,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낀데다가 군대에 있을 때는 피부가 손상돼서 따끔거리거나, 모공이 더 넓어져서 위장크림 찌꺼기 등이 끼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누보다 자극이 덜하고 세정 능력은 더 좋은 폼클렌징을 다시 쓰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디테일한 것까지 알고 많은 화장품을 쓰는 건 내가 귀찮고, 낭비라고 생각해서 안 되겠지만, 어느정도, 훈련이나 군생활에 지장이 되지 않게 해주는 피부관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군대에 와서 피부가 좋아져서 나간다면 이상하게 들리지만, 해서 크게 나쁠 것 없는 정도는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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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 일기 8 - 생활관보다 밖이 더 따뜻함 / 저는 자기 싫습니다

<생활관보다 밖이 더 따뜻함>
2015.4.24.목

  이제 완전히 봄인 것 같다. 내가 쓰는 생활관은 건물 뒤쪽 구석에 있어서 볕이 잘 안 들어서 낮이 되어도 손이 약간 시려울 정도로 춥다. 계속 생활관에 있으면 추우니까 앞으로 허 이병이 담배 피우러 나갈 때 따라 나가서(난 비흡연자이지만) 햇빛을 쐬기로 했다. 흡연장에서 좀 떨어진(그래서 담배 연기가 안 오는) 갈색 페인트칠 된 정자에 앉아 보니까 엉덩이가 따뜻하다. 앞으로 그 미리 데워진 정자에 가서 시린 손도 녹이고 해야겠다. 봄이라서 기쁘다. 민들레도 많이 피었다.





<저는 자기 싫습니다>
2015.4.29.수

  두번째로 국지도발 훈련을 하게 됐다. 첫번째와 다른 점은 이날 훈련이 철야로 진행되는 거였다. 즉 진지에 갔다가 그날 돌아오는 게 아니라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에 부대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하룻밤을 자야하기 때문에 준비할 게 더 많았다. 스키파카도 챙겨야 하고, 여분의 의류대와 모포, 판초우의까지 챙겼다. 선임들은 진지에서 먹을 간식까지 챙겨갔다.

  주간에는 다른 국지도발 훈련과 다른 점이 별로 없었다. 진지도 예전에 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가랑비가 조금 왔던 것만 달랐다. 그날 아침 본 일기예보에서 남쪽지방은 호우주의보가 발령됐다고 하고, 강원도에도 비가 올 수 있다고 해서 걱정했지만 금방 가랑비가 끝나서 다행이었다.

  재밌는 건 야간이었다. 야간의 날씨는 주간의 날씨와 매우 달랐다. 낮에는 비가 그치자 조금 덥고 땀이 났는데, 밤이 되자 서늘해지더니 새벽에는 추워지기까지 했다. 어느정도였냐면, 손난로에 모포, 스키파카까지 사용해야 버틸만할 정도였다.

  밤 10시까지는 다 같이 경계를 서다가 이후에는 한명씩 자고, 나머지 인원이 경계를 서기로 했다. 몇번 순서가 되어 자고 일어났는데, 나중에는 그냥 안 자고 앉아서 경계를 서다가 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좁고 어두운 진지에서 앉아있다가 일어나서 장구류를 풀고, 손을 더듬어 모포를 찾아 덮고, 우의도 덮고, 이러기가 귀찮았다. 게다가 시간이 다 돼서 일어날 때 체온이 조금 낮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싫었고, 다시 장구류를 차고 바스락바스락 움직이기가 성가셨다. 그래서 나중엔 다른 선임이 계속 자도록 두고, 난 앉아서 경계를 했다. 그편이 훨씬 덜 얼어죽을 것 같고 편했다.

By 대한민국 국군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 [CC BY-SA 2.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0)], via Wikimedia Commons


  밤은 재미있었다. 늦은 시간에 듣는 귀신 얘기나 옛날에 부대에서 자살한 사람 이야기 등, 사람을 오싹하게 하는 얘기도 했다. 내가 있는 진지 주변에는 가로등도 없어서 굉장히 어두웠다. 그나마 달빛이 강해서(거의 보름달) 도로쪽이 조금 보일 정도였다. 검열관이나 대항군이 오지 않도록 숲속을 유심히 봐야 했는데, 거의 안개낀 것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가끔 잡담거리가 떨어지면 사방이 고요한 때가 왔고, 그때면 주변의 아주 작은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어서 풀숲 사이로 개구리가 뛰어다니거나, 고양이나 오소리가 돌아다니는 것도 알아챌 수 있었다. 가끔 땅바닥에 있는 마른 나뭇가지나, 낙엽이 부서지거나 바스락대는 소리도 났는데, 그때마다 검열관이나 대항군이 온 게 아닌지 의심이 들면서 초조해지고, 긴장이 많이 됐다. (다행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선임들이 모두 자고 나만 남았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의 적막감과 평온함이 좋았다. (약간 무섭긴 했지만) 하늘을 보면 어두운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별이 수없이 많이 반짝거리고 있었고, 다른 산을 보면 '저기 어딘가 다른 선임들이 있으면서 언젠가 이쪽을 볼 때도 있겠지'하는 생각도 들면서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밤이 무사히 지나가고 아침에 해가 뜨자, 굉장히 보람있게 느껴졌고 밤 사이 죽지 않고 다음날을 맞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때 선임들이 다 자고 있어서 무척 좋았다. (집에서도 가족들이 다 자고 나만 일찍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정말 신기한 건 그렇게 날씨가 춥다가도 동이 트자 금세 더워졌다는 것이다.

  입고있던 방한용 잠바를 벗고 핫팩을 진지 벽에 놔두고 진지에서 나와 기지개를 펴니까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계속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있어서 다리가 저렸는데 거기서 나오니까 다리 저린 것이 싹 사라졌다. 위장을 살짝 더 하고 따뜻한 햇빛을 쬐면서 기다리니까 행보관님이 아침을 갖다 주셨다. 상당히 이른 시간에 갖다주셔서 조금 놀랐다. 선임들이 깨지 않게 산을 내려가 음식을 받아서 다시 올라갔다. 음식을 갖고 갔을 때 옆 진지 선임이 밥을 받으러 미리 와 계셨고, 자고 있던 우리 진지 선임들을 발견하시고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선임들을 깨우셨다.

  그렇게 몇 시간 있다가 철수 명령이 떨어졌고 우리는 부대로 돌아왔다. 뿔뿔이 흩어졌던 병사들이 꾀죄죄한 몰골로 다시 트럭 뒷칸에 모이자, 몇몇은 간밤에 잘 있었는지 서로 안부를 물었고, 몇몇은 피곤한 얼굴로 묵묵히 앉아 있었다. 특별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무사히 복귀했고, 그 점에 만족했다. 훈련을 많이 하면 짜증나겠지만 가끔 이 정도 해보는 건 나름 할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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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3일 목요일

이등병 일기 7 - 의외의 꿀보직, 군견 / 검열 취소→사기 진작 / 군대에선 고민을 하자

<의외의 꿀보직, 군견>
2015.4.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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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분대를 하기 전에는 군견이 묶여서 하루종일 널브러져 있는 걸 봤을 때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보니까 의외로 군견이 꿀보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봄날에 누구는 손이 불도록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쓰레기 버리는데, 바닥에 천하태평 누워서 일광욕이나 즐기다니. 살다살다 개가 부러웠던 건 처음이네.




<검열 취소→사기 진작>
2015.4.22.수
  검열 취소! 너무 기쁘다. 이제 원래 식당분대 일만 하면 끝난다니! 취소 전에는 식판을 닦으면서도 '아 이거 끝나면 끝이 아니라 다른 거 더 시키겠구나'하면서 의욕이 감소했었는데 이젠 아니게 됐다. 지겨운 청소와 잡일이 반 이상 줄어서 너무 좋다. 덧붙여 식당분대 갔다 왔을 때 아빠가 보내준다던 토목 산업기사 책들(새 것)도 도착해 있어서 너무 기뻤다.




<군대에선 고민을 하자>
2015.4.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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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 연등 시간에 등 뒤에서 선임이 미래 걱정하시는 걸 들었다. 평소에 선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깊숙한 곳에 있는 얘기들은 들을 기회가 거의 없는데 오늘 들어보니 전역하고 어떻게 살지에 대해 고민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엔 전역하면 대학교로 돌아가면 되지만, 여기있는 사람 모두가 똑같은 배경을 가진 건 아니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거나, 이미 졸업했거나 하는 사람들은 전역 후의 삶이 반드시 걱정될 것이다. 그 선임의 고민거리를 듣고나니 몇 가지 느끼는 점이 있다.

  첫째, 우리 나이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어릴적부터 대학생이 될 때 정도까진 부모님이 생계를 책임져주고, 편하게(이건 개인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부모님 보호 아래 있는 편이 더 낫다는 의미) 큰 걱정 없이 살아 왔지만, 전역 후 복학이 아니라면 얘기는 다르다. 계속 알바 수준의 일을 할 수는 없을테고, 어느정도 인정받을만한 직장을 잡고 먹고 사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올텐데 정말 막막할 것 같다. 지금이야 야간에 먹는 라면 한 봉지에 뱃속이 따끈해지고 행복감을 느끼는데, 그런 소박한 기쁨을 사회로 돌아가고 나서도 느낄 수 있을까?

  둘째, '그래도 고민이라도 한다는 게 어딜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냥 하하호호 놀 게 아니라, 일단 고민을 해야 뭐라도 시작할테니까 아직 희망적인 게 아닐까 한다. 군대가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이런 것 같다. 합법적인 경력 상 휴식기간(물론 쉬는 건 아니지만 의외로 여유시간이 있다)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내 경우에도 군대를 온 것이 생각하고 계획하고 계획을 점검, 보충할 시간을 얻기 위해서 온 거다. 나는 나름 그 주어진 시간을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선임이나 동기들도 군대에 있는 동안 싫다고만 할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좋겠다.

  셋째, 좀더 긴장해서 노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일과 시간에 일을 하고 생활관에 들어오면 자꾸 '피곤하니 잠시 쉬었다가 해야지'하고 핑계를 대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나중에 걱정하지 말고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차근차근 계획을 이뤄나가야겠다.

  이외에도 사소한 몇 가지가 더 있지만 그것들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생각이 난다면 써볼 생각이다. 사람이 군대에 갔다오면 철든다는 옛말이 있는데, 모두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변하는 것 같다. 앞으로 군 생활을 하면서 나의 단점들은 버리고, 장점들은 더 살리고, 부족한 면은 더 채워서 전역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막막하더라도 시간은 가니까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확실히 맞다. 그 선임도 잘 됐으면 하고, 군 생활 하고 있는 다른 장병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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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0일 월요일

이등병 일기 6 - 휴가에 대해 / 부모님 면회 외박 후... 섭섭하고 아쉽다 / 첫 식당분대 일

<휴가에 대해>
2015.4.17.금
  아직은 휴가 가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은데, 한번 갔다오고 나면 생각이 바뀔까?




<부모님 면회 외박 후... 섭섭하고 아쉽다>
2015.4.19.일
  부모님 면회 외박이 끝나고 부대로 복귀했다. 헤어질 때 아쉽고 섭섭했다. 생활관에 돌아와서도 부모님이 집에 잘 돌아가셨을까 걱정을 했다. 비가 살짝 와서 날씨가 어둡다. 쉬고 와서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어두운 날씨와 비슷하게 내 마음도 살짝 우울해졌다. 빨리 5월 휴가날이 돼서 집으로 가고 싶다. 그때까지 남은 시간을 알차게 잘 보낼 것이다.




<첫 식당분대 일>
2015.4.20.월
  처음으로 식당 분대를 했다. 식판 닦는 일을 했는데 힘들었다. 그래도 몇번 하니까 나중엔 노하우가 생겨서 괜찮았다. 군대 오니까 허드렛일을 주로 하게 되어 이상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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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6일 목요일

이등병 일기 5 - 첫 탄약고 경계 / 첫 전투사격 / 군대에서 힘든 점

첫 탄약고 경계
2015.4.8(수)

  오늘 탄약고 첫 경계를 섰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쉽게 피곤해지는 일이었다. 정신적으로도 피로해지는데, 계속 같은 장소를 왔다갔다 보고 있는데다가 뭔가 움직이는 게 없는지 긴장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탄약고가 털리면 해당 부대가 쓸모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잘 지켜야겠다.








첫 전투사격
2015.4.13(월)

  주간 전투사격을 처음으로 했다. 1차에 11발로 합격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다행이었다. 한번에 붙어서 어깨가 으쓱거려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군대에서 힘든 점
2015.4.15(수)

  군대에서 어려운 점 두 가지는 첫째, 원래 동작이 굼뜬데 뭔가 빨리해야할 때 힘든 것, 둘째는 나는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내가 사소하게 잘못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선임들 사이에서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알 때다.









요구할 땐 합시다
2015.4.16(목)

  오늘 오전 임무카드 검사를 했다. 나는 진지브리핑 내용만 받고 다른 건 안 받은 상태였다. 맏선임 중 한 명이 주신다고 했는데 아직 안 주셔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번 달라고 더 얘기해볼까 했는데 아직 훈련을 안 하니까 나중에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오늘 검사할 때 내가 없는 걸 더 윗선임이 아시고 내 맏선임을 혼냈다. 같이 있던 나는 괜히 불편해졌다. 크게 잘못한 건 없었지만, 기다리지 말고 '이거 필요하다'하고 계속 상기시켰다면 오늘같은 불편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내건 내가 기억하고 챙기고, 필요한 건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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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7일 화요일

이등병 일기 4 - 내 고집대로 할걸...

  크게 이상하지 않다면 내 고집대로 하는 편이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병교육대에서 자대로 올 때, 원래는 가져오기로 했던 전공서적, 공학계산기, 필통을 가져오지 않았다. 이유는 아빠가 '가자마자 공부하려고 하면 선임들에게 밉보일 수 있다'고 했고, 나도 거기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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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막상 자대에 와보니, 시간은 의외로 충분한데다가 잘못하면 놀다가 아까운 시간을 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놀기 좋은 환경이었다. 선임들도 공부하는 것에 대해 별 눈치주지 않고,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자격증이나 검정고시 등 공부하는 것을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지금은 약간 후회한다. 신교대 수료식 날 그냥 내 고집대로 계산기와 전공서적을 가져왔으면 지금 좀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을텐데. 다음주 주말에 부모님 오실 때 갖고 와 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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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 일기 3 - 보람찬 군대 생활 / 군대에서 산업기사 자격증 따기

2015.4.6(월)

  운동을 열심히 했다. 일과시간에 일도 열심히 했다. 돈도 아껴 쓰고 있고, 오늘 하루를 보람되게 잘 보냈다. 군대에서 하게 된 여러 좋은 습관들(운동, 청소, 3감사)을 전역하고 나서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015.4.6(월) 군대 3감사>
1.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선임분들께 감사했습니다.
2. 도전선 감는 일을 도와주신 선임분들께 감사했습니다.
3. 체력단련 시간에 새로운 방법으로 체력단련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2015.4.7(화)

(출처 : http://ubiques.tistory.com/24
CC-BY 4.0)


  전공 공부를 한다고는 해왔는데 솔직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TV보면서 놀거나, 피곤하다고 핑계대고 졸거나, 다른 재밌는 책(소설책 같은 건 아니고 교양서들이긴 했지만)을 보면서 전공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이다.

  오늘 행보관님과 상담을 했는데, 나에게 산업기사나 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해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셨다. 나는 이미 전공공부를 조금 하고 있으며, 산업기사는 4년제 대학 졸업자의 경우 별로 안 쳐준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행보관님은 좀더 다른 각도에서 나를 설득했다.

  앞서 얘기했듯이 혼자 전공 내용을 복습한다는 내 계획은 주변의 유혹들때문에 지켜지지 않기 일쑤였다. 행보관님도 그런 상황을 짐작하셨는지, 목표로 하는 시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태도 차이가 많이 날 거라고 하셨다. 또, 4년제 졸업자에겐 필요 없는 것 같더라도 이력서에 자격증 한줄 더 써넣을 수 있는데다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에게 더 도움이 될 거라 하셨다.

  행보관님의 말씀을 듣자, 정말 그럴거라고 내 생각도 바뀌었다. 그동안 내가 힘든 일은 피하면서 안이하게 살아온 것 같아서 반성했다. 상담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이미 빌렸던 책 두 권을 반납하고 산업기사 수험서를 두 권 빌려왔다. 앞으로 힘들겠지만 오늘 행보관님이 하셨던 이야기를 잘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고 정진해야겠다. 나태했던 나의 태도를 바로 잡아주신 행보관님께 감사하다.






<2015.4.7(화) 군대 3감사>
1. 행정보급관님께서 군대에서도 산업기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2. 허 이병이 부식으로 나온 건빵을 통째로 줘서 감사했습니다.
3. 도전선 감는 걸 그만하고 전투사격 연습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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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4일 토요일

이등병 일기 2 - 나도 '지각 인생'

  늘 받는 질문 가운데 대답하기 가장 애매한 질문이 '왜 이렇게 늦게(나이 많을 때) 왔냐'는 것이다. 군대에 와서도 이런 질문을 받았다. 대학 입학해서도 이미 받았고, 나중에 취업할 때도 이 질문을 받을 것이다.

  입대 전에는 어떻게 답을 해야할지 몰랐다. 하지만 입대 이후 여러 사람들을 만난 뒤 들게 된 생각이 있다. 바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내가 늦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의도로 하는 건 아니다. 같이 입대한 이들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적었다. 하지만 그중에 나보다 어려도 작은 건설사에서 상당기간 일하다가 입대한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의 건설업에 대한 지식은 비록 한정된 분야처럼 보이긴 했으나 자세한 사항까지 알 정도로 깊었다. 그 친구를 보면서 느꼈던 점이, '내가 나이가 더 많다고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구나'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앞으로 더 배울 것이 많은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자꾸 내 나이를 의식하면 그게 나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 외에도 나보다 먼저 입대했고, 나이도 보다 적지만 일을 정말 잘 하는 선임들, 나보다 어릴테지만 벌써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조교들, 나보다 한살 위밖에 안 되지만 벌써 중위(소위였던가)를 달고 강의까지 하고 있는 정훈장교 등을 보니까 '정말로 중요한 건 능력이지 나이가 아니다'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지난 시간은 이미 지난 것이고, 앞으로는 '내가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주눅들지 말고, 오히려 그 숫자는 의식하지 말고, 나의 능력을 키우는 데만 집중해야겠다.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더이상 내 나이가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2015.4.4(토) 군대 3감사>
1. 읽고 싶은 책이 도서관에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2. 저녁 급식이 맛있어서 감사했습니다.
3. 동아리 활동에 독서도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2015.4.5(일) 군대 3감사>
1. 성당에서 점심 식사를 제공해주어서 감사했습니다.
2. 교회에서 맥반석 계란을 줘서 감사했습니다.
3. 동기가 먹을 걸 줘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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