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9일 금요일

이등병 일기 16 - 사막 유격 훈련

  26일부터 3박 4일로 유격훈련을 했다. 처음 입소할 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 거였는데 퇴소한 지금은 유격훈련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 깨닫게 됐다.

  진짜 죽기 일보 직전까지 유격체조, 얼차려를 받은 것 같다. 유격훈련장 연병장이 사막처럼 느껴졌다. 분명 우리나라에는 사막이 없지만, 거긴 우리나라가 아니었던건지 끔찍하게 덥고 모래먼지도 많고 건조했다.

아휴... 싫다 싫어...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kormnd/8716252374 , 대한민국 육군, 라이선스 : CC BY-SA 2.0)


  교관이 체조대형으로 벌렸다가 본대형으로 모았다가 하는 걸 엄청 많이 시키는데, '동작이 굼뜨다', '목소리가 작다'는 둥 온갖 구실을 대가면서 반복시키는 바람에 한번 움직일때마다 일어나는 모래먼지가 여러번 계속 일면서, 나중에는 입에 진흙이 씹힐 정도였다.

  체조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퇴소하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온몸이 쑤시고 아픈데다가, 팔에는 멍도 여러군데 들었다. 멍든게 어디 부딫히거나 맞아서 생긴 게 아니고 오로지 체조만 하다가 생긴건데, 이때 처음으로 '아, 체조만 해도 멍이 들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유격체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시 깨닫는 한편 신기하기까지 했다.

  내가 유격훈련할 때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상태였다. 그래서 교관들도 그걸 인지하고 점심 이후에 바로 유격체조를 하지 않고 오침 시간을 주고 네 시부터 훈련을 계속 진행했다. 정말 너무 더워서 오침이 없었다면 거의 해골이 될뻔했다. 텐트에서 처음엔 잤는데, 텐트 색이 어두운 색이라 햇빛을 엄청나게 잘 흡수해서 자다 깨보면 온몸이 찝찝하게 땀이 났다. 나중엔 텐트에서 나와서 나무 그늘이 있는 언덕에 CS 전투복을 깔고 누워서 잤다. 확실히 같은 그늘이라도 나무 그늘이 훨씬 시원하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참 신기했다.


  유격 때는 물을 아껴서 먹었다. 출발 전에 미리 대대 정수기에서 수통을 가득 채워서 갔는데, 너무 갈증이 나고 더워서 한 모금씩만 먹다가 나중에 교육시간이 끝나고 남은 물을 왕창 들이켰다. 물을 다 마시고 나서 500mL짜리인지 생수가 한통씩(거의 하루에 한 병인가 간부님으로부터 받았다) 보급돼서 그걸 수통에 채우고 마시고, 그걸로 손 씻고, 수저 씻고 했는데 많이 부족했다. 실제로 전쟁이 나면 이런 식으로 힘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간혹 선임들이 물 좀 달라고 하는 때도 있어서 주기 싫었던 적도 있었다. 똑같이 보급 받아서 먹는건데 누구는 아껴 먹고, 누구는 다 먹고 또 얻어먹고 하면 아껴먹는 사람만 손해보는 게 아닌가. 다행히 훈련이 다 끝나갈 무렵엔 물이 꽤 남아서 충분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괜찮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엔 대대장님도 오셔서 음료수를 왕창 갖다주고 가셔서 상황이 좀 나아졌다.

이러시면 안 되고 물을 아껴서 '드셔야' 됩니다...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kormnd/20014465416 ,대한민국 육군, 라이선스 : CC BY-SA 2.0)


  아무튼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힘든 점들이 이것들이다. 이외에 화장실이 푸세식인 것, 텐트 안에도 모래먼지가 많아서 잘 때 찝찝한 것, 불침번할 때 전투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것, 온몸에 알이 배겨서 계단 오르내리기나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것도 힘든 것, 너무 덥고 목말라서 따뜻하거나 뜨거운 음식은 거들떠보기도 싫어서 물배를 많이 채운 것, 군장에서 뭘 꺼냈다 넣었다 하기가 불편한 것(군장에 필요한 걸 넣으려면 정말 압축시켜서 넣어야했다)등이 있었다. 샤워 시간이 5분이라 짧은 것도 있었다. 유격을 내년에 또 해야하지만 일단 올해는 끝나서 너무 홀가분하다. 주말엔 물도 많이 마시고 잠도 실컷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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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5일 월요일

이등병 일기 15 - TV는 동기들에게 양보하자 / 뻘줌한 게 싫다 / 내성적이라고 못 할건 없다

2015.5.23.토
(TV는 동기들에게 양보하자)

  휴일에 TV를 보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동기들이 좋아하는 게 너무 다르다. 처음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뭘 볼지 다수결로 정하니까 내가 보고 싶은 걸 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보고 싶은 걸 보겠다고 고집부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리모콘을 동기들에게 주고, 나는 다목적실에서 공부를 하는 게 훨씬 이득일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내가 사회에 있으면서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 때 부모님이 나를 보는 시선이 이런 거였을까? 지금 보니까 휴일에 TV만 보는 건 너무 시간 낭비인 것 같다. 공부나 독서를 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야겠다.







2015.5.24.일
(뻘줌한 게 싫다)

  선임들과 친해지진 못하더라도 뻘줌한 상태로 같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하는데 난 성격이 내성적이라서 먼저 다가가기가 힘들다. 분명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잘 안 온다. '이 말을 지금 해도 될까? 이런걸 물어봐도 될까?' 등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지면서 망설이다가 결국 별말 안 하게 되는 것이다.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해야 하는데 역시 쉽지가 않다. 이런식으로 가만히 있다가 이 날 아침 경계 때 한마디도 안 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니.... 앞으로가 걱정이다. 되든 안 되든 아무거나 내질러봐야 하는걸까?








2015.5.25.월
(내성적이라고 못 할건 없다)

  어제 경계 첫 타임에 진짜 한 마디도 못하고 어색하게 시간만 보냈었는데, 두번째 타임부터는 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무 얘기나 해보기로 했다. 정말 마음을 비우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말하기 시작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서로 주고 받고 하면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하고 보니 어렵지 않았다. 선임도 사람이었다. 이것저것 생각이 이어지는대로 대화를 나누다보니 가끔은 웃긴 얘기를 하다가 웃기도 하고, 좀 진지하게 인생 얘기도 하고 그랬다. 이렇게 얘기를 많이 하니까 아주 많은 걸 알 수 있어 좋았다. 선임의 평소 생각, 부대가 돌아가는 것, 부대 분위기, 병사간, 간부간, 병사-간부간 인간 관계, 다른 선임에 대한 것들, 내 동기에 대한 다른 시각의 의견 등 듣고 보니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경계 근무 시간은 조금만 노력하면 모르던 것들을 많이 알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성적이라고 아무 얘기 못하는 건 아니다. 예전에 EBS에서 한 성격 다큐에서처럼 내성적인 성격의 장점을 살려서 오히려 더 진중한 얘기도 할 수 있고, 가벼운 주제로도 갈 수 있고, 결국 가진 자원을 가지고 자기가 하기 나름인 것이다. 기왕 군대에 왔으니, 내 성격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극복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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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2일 금요일

이등병 일기 14 - 주특기 교육 끝 / 짐 없애기 / 적성과 흥미에 대한 오랜 고민

2015.5.22.금
(주특기 교육 끝)

  지뢰 종합평가를 보고 주특기 교육이 끝났다. 시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짬짬이 야간 연등도 하고, 노는 시간에 공부도 해서 어느정도 지식을 쌓은 상태라서 빈칸 없이 모든 내용을 다 써냈다. 결과는 1등하지는 못했지만 상위권인 것 같았고 일단 더이상 지뢰, 폭파 공부를 빡세게는 안 해도 돼서 기뻤다.

  1등은 111대대인지에서 온 아저씨가 받았다. 조교가 말하길, 발표를 자주 적극적으로 한 게 크게 작용했다고 했다. 나도 좀 적극적인 성격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등을 한 교육생은 여단장님으로부터 상장을 받는데, 포상휴가도 3박 4일인지 받는다. 난 포상을 목표로 공부한 건 아니고, 공병으로서 알아야 할 것을 배워간다는 것, 그리고 일일평가 통과하고 남는 시간에 내가 원래 하고 있던 공부를 하는 게 목표라서 미련은 없었다. 연등도 하고 노는 시간 줄여가면서 하려던 걸 했으니까 난 포상은 안 받아도 만족했다.






(짐 없애기)
  신교대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이 택배를 간혹 보내주시는데 별로 필요없는 물건을 좀 보내서 나는 짐에 잡다한 게 많다. 버릴까 생각해봤는데 언제 필요할지 모르고, 무엇보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지 않고 모아두거나, 어떻게든 쓸만한 상황 비슷하게라도 만들어서 꾸역꾸역 쓰고 있다.

  오늘 그 물품 중 두 가지를 거의 다 써가서 기분이 좋아서 이 일기를 쓴다. 두 가지는 핸드크림과 비타민이다. 핸드크림은 작은 샘플같은거였는데도 쓰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유용할 때가 가끔은 있었다. 겨울에 일을 하다보면 손가락이 트고 갈라지는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그걸 써서 손을 보호했던 것이다. 비타민은 누나가 선물로 보내준 건데 그것 역시 쓸모있긴 했지만 필수적인 건 아니라서 내 짐이 많아보이게 하는데 한몫을 했다. 이렇게 쓰다보니, '별로 불필요한 건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내 짐이 좀 줄었으면 한다. 빨리빨리 다 써서 줄여야겠다. 짐이 계속 많은 상태면 관물대 정리가 힘들고, 훈련할 때도 힘들 것 같다.







(좋은 글 - 하버드의 생각수업)
  "아무리 풍부한 지식을 얻더라도 그것을 잊어버릴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지식을 잊어버린 뒤에도 신조나 가치관, '나라는 인물을 형성하는 축'만큼은 우리 내부에 반드시 남아있다."

-후쿠하라 마사히로





(적성과 흥미에 대한 오랜 고민)

  일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건 핑계라고 봐야 한다. 누구나 일하거나 공부하는 건 힘들어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쓸모 있는 일들은 대개 배우기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일들은 종종 쓸모없는 일인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은 다른 사람 몫으로 남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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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1일 목요일

이등병 일기 13 - 대학수업급 군대 공부 / 혼자인 게 좋다 / 니 지뢰 저깄네

2015.5.19.화
(대학수업급 군대 공부)

  지뢰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너무 외울게 많았다. 각각 지뢰를 설치, 해체하는 법과 특성, 제원을 알아야 했다. 제원은 뭐하러 외우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외워서 일일평가를 보긴 했다.

  시험은 거의 대학시험같은 느낌이었다. 간단하지만 서술형도 있어서이다. 정말 괴스러운 것은 일일평가 통과하려면 만점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여기 온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부사관도 커트라인이 만점이라는 걸 듣고 놀란 눈치였다. 나중엔 조교도 너무 빡세다 생각했는지 사소한 걸 틀리는 건 감점만 하고 통과시켜줬다. 아무튼 이상한 것도 외우느라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






2015.5.20.수
(혼자인 게 좋다)

  나랑 맞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 가도 좋다. 성격의 장점을 살리자. 각자 성격마다 잘 하는 일이 있다. 굳이 내가 힘든 부분에서 잘 하려고 너무 마음 쓰지 말자. 꼭 사람들 사이에서만 뭔가 얻을 필요 없다. 의존할 필요도 없다. 혼자 공부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알고보면 공부는 재밌다. 새로운 걸 알아가는 기쁨이 있다. 괜히 다른 사람한테 어설프게 친한 척하다가 별 소득없이 뻘줌한 상황이 되지 말자. 혼자 공부하는 게 같이 멍하니 TV보는 것보다 낫다.








2015.5.21.목
(니 지뢰 저깄네)

By 대한민국 국군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 (2014.5.9 육군 6공병여단 지뢰매설 Republic of Korea Army) [CC BY-SA 2.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0)], via Wikimedia Commons


  영점사격장에서 지뢰 매설 실습을 했다. 야삽으로 땅을 팠는데 잔디 뿌리가 많아서 땅 파기가 힘들었다. 대전차지뢰는 크기가 커서 대인지뢰보다 땅을 더 많이 파야해서 그만큼 더 힘들었다. 무게도 엄청 무거운 건 아니지만 가벼운 것도 아니라서 매설이 좀더 곤란했다.

  힘들고 먼지도 많이 묻었지만 오랜만에 삽질도 하고 몸 쓰는 일을 해서 재미있었다. 난 이상하게 그런 게 마음에 든다. 어렸을 때부터 힘든 일 안 하고 편하게 펜대 굴리면서 커서 힘든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된 것 같다. 앞으로 기회 될때마다 연습을 해서 숙련도를 많이 높여야겠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묻은 지뢰는 아무나 다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티가 많이 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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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9일 화요일

이등병 일기 12 - 최선을 다하는 건 어렵다 / 취사병이 해주는 밥은 왜 맛이 없다고 할까 / 게임도 공부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

2015.5.14.목
(최선을 다하는 건 어렵다)
  말이 쉽고 실천하기 어려운 게 이거같다. 좀 힘들면 '이 정도 했으면 최선을 다했지'하면서 낮잠을 자거나, 나중에 한다고 하고 자꾸 미루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일일평가는 주요 폭약들의 특성같은 걸 외우는 겨였다. 나는 요 며칠 사이 입에 염증이 나고 괜히 피곤해서 공부를 열심히 안 했다. 좀 무리하면 감기몸살이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일평가에 떨어지고 나니까, 그게 그냥 핑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하고 졸려도 '조금씩이라도 할걸'하고 후회했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공부 좀 더 한다고 죽는 일은 없는데 난 너무 몸을 사렸다.

  앞으로 게으름 나고 놀고 싶어질 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될지 자꾸 생각해서 부지런하게 살도록 해야겠다.







2015.5.18.월
(취사병이 해주는 밥은 왜 맛이 없다고 할까)
  나는 별로 입이 짧지 않아서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오늘 '정글의 법칙'을 보는데 뭘 먹는 장면을 많이 봤다. 대왕조개, 갑오징어, 생선 등을 노릇노릇 익혀서 통통한 살을 베어 먹는 장면을 많이 봤다. 생활관에 있는 사람 모두가 감탄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보다보니 참 이상했다. 저런 정글에서 찔끔찔끔 먹는 게 맛은 있겠지만, 별로 양이 안 찰 것 같았는데, 거기서 먹는 음식은 부러워하고 군대 급식은 별로 맛 없다고 하는 게 그랬다. 군대 급식은 이 정도면 맛 있는 편이고, 양도 충분히 받을 수 있는데다가, TV에 나오는 재료들이 대부분 나와서 별로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자꾸 TV에 나오는 게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게 이 경우도 마찬가지인걸까? 저 상황에 처하면 TV속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겠지만, 지금은 굳이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매일매일 밥을 해주는 취사병들에게 감사할 줄 알고, 급식의 질도 이정도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하겠다. 너무 당연하게 나오는 밥이라 소중함을 못 느낄 수 있지만, 자꾸 이걸 의식하도록 해야겠다.







2015.5.19.화
(게임도 공부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
  뭔가 배우는 건 정말 오래 걸리는 일이다. 게임도 똑같다. 시간이나 돈을 투자해야 한다. 일과 시간이 끝나고 하스스톤 게임 경기를 보다가 한번 배워볼까 하다가 든 생각이다.

  게임을 배우는데 시간 투자하는 건 지금보니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게임을 줄이고 다른 쓸모있는 걸 배우는데 투자하자. 게임은 친구들끼리 할 때만 가끔 하는 정도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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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1일 월요일

이등병 일기 11 - 먹던 과자 짬처리 / 연등 잡담 간략 메모 / 전입신병 집체교육 첫날

2015.5.2.토
(먹던 과자 짬처리)
  전날에 생활관에서 뭘 먹다 여러번 혼나서, TV 연등이 끝난 다음날에 남은 과자들을 아예 걸릴 꼬투리를 남기지 않기 위해 먹어치워버리기로 했다. 나와 허 이병이 과자를 먹고 싶은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차례에 걸쳐 주머니에 먹을 걸 담아서 다목적실까지 운반한 뒤 짬처리를 했다.

  나쵸와 초코파이 여러 개, 시리얼(연두색 플라스틱 통에 든 건데 이름이 기억 안 난다)을 가져가서 먹었다. 여유롭게 먹으면 맛도 있겠지만, 아침밥을 먹은 상태인데다가 곧 동아리 활동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먹고 씻기도 해야 해서 서둘러 먹었고, 맛이 있다기보다 정말 말 그대로 '짬처리'하는 기분이었다. 이제 당분간은 PX가서 뭘 사먹는 일이 잘 없을 것 같다.







2015.5.8.토
(연등 잡담 간략 메모)
  구 상병님, 임 상병님과 야간 공부연등 시간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함. 임 상병님과 같이 영어 원서를 읽다가 역사 얘기, 이승만 대통령 얘기를 했는데 당직부사관 하시던 구 상병님도 끼게 된 것. 이후 새벽 두 시 반부터 두시간동안(원래 한 시간 반인데 후번 불침번과 30분빵을 해서 져서 30분 더 함. 이 날 이 상병님이 감기에 걸린 상태였는데 내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거라 죄송했음) 이 상병님과 휴가 때 여행 간 얘기, 선임들에 대한 얘기, 간부들 얘기, 전출이나 군 생활에 대한 얘기, 각자 장래에 대한 고민 얘기 등 많은 대화를 함.






2015.5.11.월
(전입신병 집체교육 첫날)
  오늘부터 2주간 전입신병 주특기 집체교육을 한다. 운좋게도 우리 대대가 교육대 역할도 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짐을 싸서 같은 건물 4층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됐다.

  짐을 싸서 올라갔고, 신고식을 하고 폭파 과목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처음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처음번 조교가 잘 못 가르치고 대충대충 넘어가고 부연설명 없이 거의 PPT자료를 읽는 정도만 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교육을 한 조교는 설명을 잘 했다. 사례도 많이 들고 이유도 잘 이야기했다. 폭파 과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만 했다.

  교육이 끝나고 실습 시간이 됐다. 실습은 도화선(?) 매듭 묶는 걸 했다. 바로매기, 소말뚝매기, 눕혀 통달아매기, 홀쳐매기 네 가지를 제한시간 내로 끝내는 것이 과제였다. 천천히 하는 건 쉬웠는데 빨리 하는 건 자꾸 줄이 꼬여서 어려웠고 평가를 볼 때 계속 불합격을 받았다. 나중엔 좀 짜증났는데 다행히 몇 시간 쉬고 저녁먹고 평가를 보라고 해서 기분이 나아진 상태로 볼 수 있었다.

  이번 주특기 교육에서 난 포상까지 바라지 않는다. 그냥 새로운 걸 할 줄 아는 정도까지만 배우고 내려갈 계획이다. 포기하지는 않고, 충분히 배우고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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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일 금요일

이등병 일기 10 - 왜 생활관에서 뭘 먹으면 안 되는 거야

  우리는 나름 몰래 먹는다고 먹었다. 설마 선임이나 간부가 복도를 지나가면서 문에 난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뒤돌아서 과자를 먹는 후임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걸렸고, 혼났다.

  처음 혼났을 때 우리는 음식을 그냥 버릴 수는 없고 걸리지 않게 먹자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또 걸렸다. 이번엔 다른 선임들 몇명도 얘기를 듣고 생활관에 찾아와서 혼났다. 내 맏선임도 오셨고, 그래서 되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맏선임도 더 위의 선임도 나와 내 동기들이 생활관에서 음식물을 먹는다는 걸 알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부터 나와 내 동기들은 완전 찍혔을거라며 쫄아있었다. 약간 어이없기도 했다. 왜냐하면 생활관에서 왜 먹으면 안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과자 먹는다고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고, 부스러기가 생긴다고 해도 매일 청소하는데, 이 정도도 안 되나 싶었다.

  나중에 물어봤을 때, 취식물 섭취 금지 사유는 예전에 생활관에서 뭘 먹어도 되던 시절, 라면같이 냄새가 많이 나고 국물을 흘리면 쉽게 지저분해지는 음식을 많이 먹어서 생활관이 더러워지고 냄새도 많이 나게 돼서 통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어느정도 이해는 됐다. 그래도 살짝 억울한 점은, 라면이나 냉동식품도 아니고 겨우 과자나 초코파이같은 건데도 이 날처럼 콤보로 혼났다는 것이다. 또 나중에 알고 보니, 선임들 중 몇몇도 밤에 TV보면서 뭘 먹다가 걸렸다고 해서 약간 이 규칙이 이상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그 얘기를 다음날 아침에 듣고 나니까, 우리만 걸린 줄 알고 쫄아있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

  이날 이후로 나는 그냥 음식물은 생활관에 두지 않고, 있더라도 다목적실에 가서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상한 규칙같지만 그걸 어겨서 털리는 건 싫으니까. 내가 나중에 선임이 되면 그냥 음식물 생활관에서 먹더라도 눈감아 줄거다. 대신 너무 지저분하게 먹으면 잡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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