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일 일요일

독후감 -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

쓴 날 : 2015.10.29. 목 (군대에서)

  불모지에서 전쟁 영화 <<퓨리>>를 봤는데 재미있어서 전쟁에 관한 수기나 소설책이 없는지 불모지 도서관을 뒤지게 됐다. 겨우 하나가 있었는데 제목이 '모뉴먼츠 맨'이었다. 책 등에 있는 설명을 보니, 2차 세계대전 중에 실제로 존재했던 미술품, 문화재 등을 보존, 보호하는 일을 했던 연합군 작은 부서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원했던 건 전선 가까이서 싸운 병사나 장교들의 이야기였는데 왠지 미술품 보호 임무는 별로 관심도 없고 극적인 장면들도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선뜻 그 책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책이 없어서 그냥 읽어는 보자는 생각으로 '모뉴먼츠 맨'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잡고 먼저 훑어보고 느낀 첫 인상은 단순한 소설책이 아니고 전기문에 가깝다는 거였다. 상당히 공을 들여 책을 쓴 흔적이 여럿 있었다. 주석도 달려 있고, 참고문헌, 참고한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 편지(저자는 기자인가 그랬던 것 같다. 이 부서의 활약을 그냥 역사상에서 묻혀버리게 하기 싫은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한다.) 사진들,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장 배경, 약력, 성격을 요약한 것도 있었고, 독일군 측의 기밀 문서나 편지도 이 책을 쓰는 데 자주 동원되었다.

  책에서 소개된 내용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관한 부분이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하고 나서 점점 프랑스를 해방시키는 과정 중에 독일군이 그 수도원이 있는 협곡에서 방어선을 펴고 있고, 그곳의 지형이 까다로워서 연합군이 애를 먹었었다. 날씨도 비가 많이 와서 안 좋은 상태였는데, 덕분에 높은 곳에 있는 그 수도원이 마치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성으로 보였고, 연합군은 독일군이 수도원에 장비와 물자를 저장해두고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연합군 측 지휘관은 수도원을 폭격할지 말지에 대해 고심했다. 적의 물자 혹은 병력이 건물 안에 있는건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가, 수도원 안에는 많은 수의 미술품,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휘관은 폭격을 요청하고, 건물은 박살난다. 전쟁통에 문화재가 무슨 대수냐 싶었지만, 의외로 대가는 혹독했다. 우선 국제적으로 여론이 안 좋아졌다. 독일군은 연합군이 문화재나 파괴하는 야만적인 행위를 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전쟁 시에 역사적인 건축물을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한 적이 없다고 선전했다. 이는 연합군 측 병사들 뿐만 아니라,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들의 사기를 저하시켰다. 또한 전술적으로도 악영향이 생겼는데, 독일군 방어선 한가운데 있던 건물이 사라지자, 독일군이 건물 잔해에도 병력을 배치하여 오히려 방어선이 더 메꿔지는 결과가 생긴 것이다. 이 일로 연합군 총 사령관이 '역사적인 건축물, 문화재에는 최대한 피해를 끼치지 말라'는 공문을 내려보내게 되고, 문화재 보호 전담반인 '모뉴먼츠 맨'은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힘이 실리게 된다.

  물론 모든 문화재들이 보호받지는 못할 것이고, 수도원 이야기는 아주 특수한 경우의 일일 수 있다. 내가 만약 지휘관이고, 문화재를 파괴할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할지 선택해야하는 딜레마 상황에 처한다면, 그냥 간단히 파괴하는 쪽을 택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그게 딜레마라는 걸 인식하는 것부터가 이 책이 성공한 거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책에선 기념물 전담반(Monument's Men)의 고충에 대한 얘기도 자주 나온다. 중요성에 있어서 문화재 보호는 워낙 후순위에 있는 일이다 보니 병력 지원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나중에도 겨우 장교 한 명 당 비서 용도로 병사 한 명 붙여준다)라 장교들이 직접 여기저기 다니면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전담반원들은 한 열댓명밖에 안 됐는데, 그 숫자로 유럽 전역의 문화재들을 담당해야했으니, 한명 당 어느 정도 면적을 맡아야 했는지 생각해보면 참 할 일이 태산이었을 것이다. 장비도 아예 '아무것도' 없었다. 권총 한 자루에 필기도구, 지도밖에 없었다. 차량도 없고 운전병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부대의 차량을 히치하이킹 하듯이 얻어타고 다녀야 했다. 급박한 전쟁터에서 서로 얼마나 불편했을지 알 수 있다. 나중엔 전담반원 중 한 명이 독일군이 버리고 간 폭스바겐 승용차(유리창이 다 깨져서 없고 지붕도 뜯겨 나간 상태)를 고쳐서 타고 다니며 일을 했다. 넓은 면적에, 차를 얻어타는 경우가 비일비재이다 보니 어느 지역에 보호가 필요한 문화재가 있다는 정보가 들어와도 당장 그곳으로 못 가서, 갔을 땐 이미 폐허가 된 대성당을 보거나 전부 약탈당해 뼈대만 남은 건물들을 보는 경우가 잦았다.

  스파이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었다. 장교가 병사를 전혀 대동하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뭔가를 종이에 적거나 사진을 찍고 다니고, 차량을 타고 있지도 않으니 스파이로 오해받을 만 했다. 그리고 소속을 물어봐도 진짜 있는건지도 의심스러운, '기념물 전담반'이라니. 무슨 포병대나 공병대도 아니고. 그래서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아무리 '진짜 그 부서가 육군에 있다'고 해도 헌병이나 기무반으로 조사받으러 가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한다.

  전쟁터에선 폭격도 문제였지만 약탈도 심했다. 아군 적군 불문하고 전리품을 챙기는 습성은 누구에게나 있어서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병사들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했고(확실히 교육받은 군대는 약탈을 훨씬 덜 했다고 하니 참 신기한 일이다) 역사,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에는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문도 붙이러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장비가 아무것도 없어서 경고문을 인쇄할 기계도 없었기 때문에, 경고문 수량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공병대에서 지뢰 표지를 빌려와서 보호할 건물 입구에 붙여놓기도 했다고 한다.

  병사들의 약탈보다 더 심각한 약탈도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나치당이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대량으로 문화재를 어디론가 수송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히틀러와 괴링, 히믈러 등 나치의 고위층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미술품을 챙겼던 건데, 히틀러가 보낸 여러 공문서에서 이런 내용이 나오며, 히틀러 본인은 전쟁을 일으키기 훨씬 전부터 자신만의 미술관을 짓고 싶어했다고 한다.(실제로 히틀러는 미술가가 되고싶어할 만큼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다) 이 대량 약탈을 하는 건 미술품에 거의 관심이 없는 병사나 장교가 맡아서 했기 때문에 오래된 미술품 중 상당수가 운반 중에 훼손되기도 하고, 적절한 보존 처리를 받지 못해 부식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나치는 점령 지역의 미술관, 박물관 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미술품 컬렉션도 약탈했다. 전쟁 전에는 유대인을 추방하면서 그들이 가진 미술품들을 모두 압류하기도 했는데 그 행동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편협한 인종차별 행위라고 생각한다.(나치는 유대인을 국외추방할 때 미술품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재산을 압류하고, 달랑 옷 가방 하나만 가져가게 하거나 아예 못 가져가게 했다)

  이런 미술품들은 어디로 운반되었는지, 어떤 교통수단으로, 어느 경로를 따라 운반되었는지 알기 힘들었다. 연합군의 기념물 전담반은 이걸 다 추적해 찾아내야만 했다. 현재 볼 수 있는 미술품들 중 유명한 것들이 매우 많았다. 미술가 이름만 들어봐도 대체 이 기념물 전담반이 무슨 수를 써서 그걸 다 되찾은 건지 신기할 정도다.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고흐, 고갱,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티치아노, 얀 반 에이크, 보티첼리, 루벤스 등

  기념물 전담반원들을 도운 사람 중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하던 여성 큐레이터가 한 명 있는데, 이 사람이 독일군에 뺏긴 문화재들을 회수, 추적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고 나서부터 이 사람이 스파이 역할을 해서 어떤 미술품이 어디로, 어떤 방법으로 운송되는지 추적해온 것이다. 도중에 들킬 뻔한 적도 있고, 프랑스 레지스탕스로부터 적이 아닌지 오해받기도 했다. 결국 이 사람이 연합군도 돕고, 간접적으로는 레지스탕스도 도와서 나치의 비밀 미술품 보관소를 찾아내게 된다.

  책을 보고 나니까 평소에 별 생각없이 봐 오던 역사적인 것들이 그냥 아무 희생없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전쟁 후반부에는 몇몇 나치의 광신적인 행동 때문에 미술품들이 폭파될뻔 하기도 했다. (나치 독일이 아니면 누구의 손에도 들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 우리 나라도 6.25 때 서울에 있는 어떤 궁궐에 북괴군이 들어간 걸 UN 군이 발견하고 그 궁궐을 파괴하면서 북괴군을 잡을지, 아니면 놔둘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결국 북한군이 빠져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을 소탕해서 그 궁궐이 지금까지 멀쩡히 볼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비록 책은 유럽의 2차 세계대전 이야기지만 지금 휴전중인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누군가 문화재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해서 지금 남아있는 것들이 있는 게 아닐까? 책이 아주 극적으로 재밌는 건 아니지만 읽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Unported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