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일 일요일

독후감 -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쓴 날 : 2015.10.06. 화 (군대에서)

  불모지에서 전공책 본다고 가져갔다가 공부하고 쉬는 시간엔 일반 책도 읽고 싶어서 진중 문고에서 이 책을 읽게 됐다.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TED라는 비영리단체의 강연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말을 아주 설득력 있고 유머러스 하게 해서 그 강연이 기억에 남았고, 그래서 이 책을 고르게 됐다.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난이도이다. 왜 겉표지를 굳이 양장으로 했을까 싶을 정도로 가벼운 내용들이 들어 있다. 분량도 얼마 안 된다. 내용은, 저자가 영국의 히드로 공항에 초대받아서 공항 내 대부분의 시설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일기로 쓴 것이다. 공항 측 회사의 CEO가 회사의 홍보를 위해 작가가 공항에 상주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인데, 회사가 적자를 보고 있음에도 그런 걸 허락한다니(물론 작가가 워낙 유명한 사람이긴 해서 확실히 홍보는 되겠다) 역시 외국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약간 시끄러운 공항에서 글쓰기가 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그건 작가의 역량을 믿고 일단 보기로 했다.

Photograph by Mike Peel (www.mikepeel.net).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표지에서 공항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물 전경 사진이 나와서 참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 역시 히드로 공항의 거대하면서 현대적인 모습에 감탄하면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써 두었다. 난 하려고 하는 일이 토목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엔지니어나 기술에 관한 이야기라면 귀를 기울여 듣는다. 거대한 건축물을 이야기하면서 기술이나 기술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듯이, 저자는 히드로 공항의 통유리로 지어진 특성과, 구조가 유지되도록 떠받치는 강재로 된 기둥들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감탄하고 있었는데, 나도 언젠가 꾸준히 계속 공부한다면 그와같은 쓸모 있는 건축물들을 짓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을 하니까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고 좀더 인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분야의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같은 방향을 향해 노력하는 덕분에 그런 대단한 성취를 할 수 있었다니 정말 멋지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공항에 붙은 호텔과 여러 컨퍼런스 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곳에 여행객들보다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소위 엘리트층이라 할 만한,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는 사람들이 주로 있었다. 저자는 그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다. 높은 곳에 있지만 오만하지 않고 세련되었으며, 자기 일에 즐겁게 몰두하는, 활력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공항에는 희로애락이 공존한다. 행복한 마음으로 어딘가로 여행간다는 사실에 기대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 사소한 다툼으로 출발해서 그게 점점 커져서 여행을 망치고 있는 사람들, 눈물을 흘리며 서로 잠시 이별하는 연인들, 다양한 사람들의 온갖 감정들이 표출되는 곳이다. 저자가 주목한 공항 풍경 중에 내가 관심 있게 본 건 분노하고 있는 승객과 여행 왔다가 싸우는 가족이다. 이런 부정적인 상황도 관찰하고 적어둔 저자가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분노하는 승객은 비행기 탑승 시간에 조금 늦었지만 아직 비행기가 출발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규정 상 탑승을 못 한다고 공항 안내원이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상식적으로 바로 창 밖에 자기가 타기로 되어 있는 비행기가 있는 걸 보고 누가 이 규정을 이해할까? 저자는 '분노의 뿌리는 희망'이라고 이야기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만약 비행기가 아예 출발한 상태라면 희망이 없으니까 분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행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평상 시에 하는 일들에도 희망사항이 있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에 화가 나는 것 같다.

  다투는 가족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다투는 내용이, 부부가 다투고 있었는데 처음엔 사소한 지적에서 싸움이 시작됐다가 나중엔 자식 얘기로까지 번져서 그런 거였다. 우리 나라랑 싸우는 레퍼토리가 비슷했다. 아내는 남편이 어린 자식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고, 주로 자신이 자녀 양육에 신경쓰고 남편은 무심하다며 화를 냈고, 남편은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면서 가족을 부양하는데 부인은 그런 걸 이해해주지 못한다며 화를 냈다. 가족에서 부부의 경우는 어쩔 수 없는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저자는 한참을 다툰 뒤 뾰루퉁한 상태로 비행기에 탑승하는 이 가족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싸운 상태지만 만약 비행기가 추락하는 상황이 오면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그렇게 말할 새도 없이 다 기절하겠지만 뭐 일단은... 그렇게 얘기할 것 같다.

  현대 사회는 물질적으로 과거에 비해 많이 성장하여 소위 '먹고 살만' 해졌지만, 내적인 것은 여전히 과거나 지금이나 해결하기 힘들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미학적이거나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기쁨을 끌어내는 능력은 이해, 공감, 존중 등 그보다 더 중요한 여러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요구를 먼저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실에 위태롭게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헌신하고 있는 관계가 몰이해와 원한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는 종려나무와 하늘색 수영장을 즐길 수가 없는 것이다."

"불을 피우거나 쓰러진 나무로 초보적인 카누를 만드려고 애쓰던 인간 역사의 초기에, 우리가 인간을 달로 보내고 비행기를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우리 자신을 견뎌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불끈 성질을 낸 것을 사과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이렇게 고생을 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정말 인간은 번쩍번쩍하고 튼튼한 공항도 지을 수 있고, 별의 별 일들을 할 수 있지만,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못 하는 일도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에선 여행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찰한다. 저자는 이렇게 쓴다. "사람들은 자꾸 잊는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가, 다시 여행에 대해 동경한다" 나에게 여행은 어떤 걸까?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여행의 장점을 인정한다. 좀 사치스러운 취미인 것 같긴 하지만 자기가 계획하고 자기가 배울 것을 정하는 여행은 할 만한 것 같다. 최근에는 대충 끌려갔다 오는 여행이 아니고 어딘가 답사하고 오는 여행을 해봤는데, 유익하고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깨달음을 얻으려 애쓰는 여행보다 실용적으로 뭔가를 배우려고 가는 여행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공항 풍경을 보며 쓴 수필이지만, 작가의 관찰력과 세심함이 정말 잘 드러난 책이었다. 나도 군대에서 단순하게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지 말고 열심히 글을 써 봐야겠다. 군 생활 중에도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있고, 이것저것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 그냥 아까운 시간 허비하지 말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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